엉뚱한 수리점
얼마 전 아이가 너무 놀기만 하는 것 같아서 한마디 한 적이 있다.
“요새 너무 노는 거 아니야?”
아이는 잠깐 생각하는 척하더니
“엄마, 아이는 원래 많이 놀아야 되는 거래?” 했다.
아이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생각해 보면 아이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공부한 기억보다는 밖에서 뛰어 놀았던 기억이 훨씬 많다. 그 기억이 때때로 삶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안다.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때문에 내 아이도 그러길 바라면서도 또 다른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의 어린 시절과 아이가 자라는 지금은 환경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난 놀이의 경쟁 속에서 살았다. 생각해 보면 놀이의 경쟁이란 건 순한 맛이다. 순해서 서로 뾰족해지다가도 금방 동그래진다. 그런데 지금 아이가 사는 사회는 어떤가? 서로 간의 경쟁이 뾰족하고 날카롭다. 누구보다 잘해야 하고 누구보다 앞서나가야 한다. 이런 곳에서 마냥 놀기만 한다는 게 가능할까. 사실 이건 엄마의 생각이고 엄마의 걱정이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한 결과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떨까? 아이는 지금 아이가 사는 세상이 마냥 즐거울 수 있다.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맑고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엉뚱한 수리점이란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입장과 어른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어른들은 마음에 안드는 게 있으면 고치려고만 하는데 아이는 그걸 재미있는 놀이로 상상해 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 어른은 방귀 소리가 너무 커서 고치고 싶은데 아이는 그 재미있는 걸 왜 고치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물건으로 꽉 들어 찬 옷장 안을 고치고 싶은 어른이 있는데 아이는 옷장안이 숨바꼭질할 때 딱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어른에게 물웅덩이는 옷을 지저분하게 할 수 있는 것인데 아이에게는 발로 차며 놀기에 재미있는 곳이다.
빗자루를 타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엉뚱한 수리점에 가서 진짜 새처럼 날 수 있게 빗자루를 고쳐달라고 한다. 그런데 수리점 아저씨는 그건 안되고 청소할 때 잘 쓸 수 있도록 튼튼하게 고쳐준다고 한다. 아이는 놀라서 도망치듯 수리점을 나온다.
재미있는 걸 왜 재미없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아이는 생각한다.
난 절대 고치지 않을 거라고!
아이는 원래 놀아야 되는 거래. 라는 아이의 말이 꼭 책 속의 아이의 말처럼 들린다.
엄마가 뭐라고 해도 난 절대로 노는 걸 그만 두지 않을 거야.
이 재미있는 걸 왜 그만 둬야 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