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이 드디어 개학했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소독을 철저히 한다고 하니 보내기도 결정했다. 아이도 유치원에 갈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3월이 훌쩍 지나 만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제일 안쓰러운 것 같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며칠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보냈다. 두통이 있으니 집안 일이 끝나면 누워만 있었다. 가끔 폼플러가 보이면 유투브에서 봤던 동작을 몇 개 해보기도 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네가 좀 생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을 들으니 뭐라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요가나 필라테스, 커브스 같은 순환운동을 하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싶었다. 순간 아주 순간적으로 걷기라는 아주 좋은, 나에게 어쩌면 딱 맞을 수 있는 운동 같은 운동 같지 않은 그게 딱 머리를 스쳤다. 그래! 걷기가 있었지! 그날 저녁을 일찍 챙겨먹고 뒷정리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었다. 저녁 산책이 아닌 저녁 운동, 걷기를 하기 위해서 였다. 남편은 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고 아이는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떼를 쓰다 엄마가 안 데려가겠구나를 알아챈 아이는 떼쓰기 대신 파이팅을 해주었다. 아이는 아빠와의 시간도 좋아하니까 문제될 건 없었다. 정말이다.
집 앞에 긴 천을 끼고 양쪽으로 저전거 도로와 산책길이 있다. 평소 지나다 보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고 걷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그땐 걷는 사람들이 운동이 아닌 산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운동하는 곳이 아니었다.
4차선 도로 횡단보도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멀리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시간에 밖에 나와 본 게 얼마 만인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저녁 시간은 늘 집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아주 가끔 밖으로 나올 때면 밤 불빛이 이렇게나 예뻤었나 놀라기도 했다.
신호등이 바뀌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횡산보도를 건너면 바로 산책길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첫날치고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운동을 위해 걷는 사람들, 뛰는 사람들. 내가 잘 몰랐던 산책로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왜 진작 몰랐을까. 이렇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도 사람들 틈에서 걷기 시작했다. 팔을 앞뒤로 흔들면서. 처음이라 소심하게 흔들긴 했지만. 물소리도 들리고 풀벌레 소리도 들리고 시골에서 맡아보던 저녁 냄새도 났다. 풀들이 풍기는 냄새. 어스름 날이 어두워질 때쯤 풍겨오는 그런 냄새가 있다. 난 그게 저녁 냄새 같다. 시골에서 그 냄새를 많이 맡아 본 기억이 있었다.
처음 걸어보는 산책로도 아닌데. 이상하게 오늘 처음 이곳을 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마음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다리 아픈 걸 잊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20분쯤 걸은 것 같았다. 고작 20분에 이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다니. 너무 했다, 싶었다.
첫날이니까 40분만 걷자. 얼굴 위로 땀방울이 흘렀다. 목덜미가 끈적끈적 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었지만 그 바람조차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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