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한강 소설을 쓰는 동안 그 묘지에 가끔 찾아갔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날씨가 맑았다. 향을 피운 뒤 눈을 감고 서 있으면, 온 세상이 눈꺼풀 바깥으로 밝고 찬란한 주황색이었다. 마치 아주 따뜻하고 친근한 수많은 존재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형언할 수 없는 온기 속에서,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들의 말을 내 심장에 받아 적을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그것이 과연 진실로 가능할지 알 수 없다 해도, 어쨌든 좀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밖에는 길이 없다고. 인간의 참혹에서 존엄으로, 그 아득한 절벽들을 연결하는 허공의 길뿐이라고. - 한강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수상소감문, 창비 2017년 겨울호 소년이 온다를 이제야 읽게 되었다. 웬일인지 선뜻 손이 가.. 2020. 8.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