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궁금한게 있는데요, 꿈이 뭐에요?”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한 직원이 팀장을 향해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그때 ‘꿈’이란 단어를 듣고는 아주 깊은 산골의 아주 작고 조그마한 오두막 집을 잠깐 떠올렸었다. 그 꿈이란 것은 그렇게 꼭꼭 숨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지금 품고 있는 꿈이란 그런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어떤 금단의 말처럼.
사실 팀장의 꿈은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그 궁금증은 회식이 있기 몇 시간 전부터 내 머리 속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팀장이 건네 준 회의자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팀장은 개인적인 감정을 마구 풀어놓는 성격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회의자료 맨 뒤에 첨부된 짧은 편지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귀여운 글씨체라니... 처음 몇 줄을 읽을 땐, 일에 성과가 없으니 좀 더 일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는 일종의 ‘일 주입식’ 편지려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편지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꿈이 있기에 오늘도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는 마지막 한 줄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고 잊고 있었던 ‘꿈’이란 놈을 다시 찾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회식에 와서 보니 그런 마음이 든 것이 나 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 꿈이요... 말하고 싶지 않은데... 꼭 말해야 되나요?” 끈질긴 격려와 설득으로 우리는 팀장의 ‘꿈’을 알아낼 수 있었다. 팀장의 꿈은 동화작가였다. 회의 자료에 꿈 이야기를 쓴 건 동화작가로 등단한 친구가 첫 책을 냈다며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축하해 줄 일이지만 조금 배가 아팠고, 눈물이 날 뻔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대 초.중반 이후 이렇게 꿈에 대해 입에 거품 물고 말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한 번 풀린 꿈 보따리는 좀처럼 다시 짐을 꾸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는 늦도록, 진심으로 팀장의 꿈을 응원해 주었다. 아마 그 술집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미처 말하지 못한 우리의 꿈들이 모르는 사람들의 술잔을 기웃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몇 해전 나는 작은 학원에서 글쓰기 강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 읽었던 책이 ‘꿈을 찍는 사진관’이었다. 꿈을 찍는 사진관은 짧은 단편동화지만 잊고 있던 꿈 혹은 기억을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동화다. 한 아이가 봄을 그리기 위해 산에 올라갔다가 꿈을 찍는 사진관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어렵게 찾은 사진관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는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동화에 나오는 꿈은 자면서 꾸는 꿈에 가깝다. 하지만 꿈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은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으면 ‘꿈에서라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다 달콤한 꿈이 찾아오는 건 아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에서도 보면 사진관을 찾아가는 아이가 도중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포기했다면 자신이 원하는 꿈을 꾸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꿈을 꾸고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꿈을 꾸는 일입니다. 어떻게 짧은 시간에 꿈을 꿀 수 있으며, 또 꿈을 꾼다 해도 그게 정말 자기가 사진에 옮기고 싶은 꿈일까 하는 것입니다. 실로 내가 제일 오랫동안 연구에 애쓴 것이 이것입니다. 꿈을 찍는 것쯤은 이것에 비하면 식은죽먹기였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나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오래 가졌고,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찍는 사진관>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 맨 처음 하던 질문이 ‘꿈’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아 낸 한 가지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꿈을 질문할 때, 어린 친구들일수록 ‘자신의 꿈’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는 것. 초등 고학년이나 중학생만 되어도 자신이 정말로 원하고 하고 싶은 ‘꿈’에 대해서는 함께 공유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커갈수록 ‘꿈’이란 더 깊숙이 숨겨 놓고, 나만 꺼내 볼 수 있는 비밀 일기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팀장이 잠시 머뭇거렸던 것은 너무 깊숙이 숨겨 놓은 ‘꿈’을 단번에 찾아내지 못해서 이지 않았을까.
꿈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적든 많든, 그 꿈이 이루어졌든 그렇지 않았든 꿈은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소중히 간직하며 가끔씩 꺼내보는 한 장의 기분 좋은 사진 같은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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