ː 고기야, 난 네가 좋다. 또 너를 대단히 존경한단다.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단신으로 고기잡이 하는 노인이다. 노인은 84일 동안을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허송했다. 처음 40일에는 한 소년이 같이 있었다. 그러나 40일 동안 고기 한 마리 못 잡자, 소년은 부모의 명령으로 다른 배를 타게 되었다. 어느 날, 노인은 홀로 바다 한 가운데 나가 커다란 고기 한 마리를 낚았다. 고기가 워낙 커서 하룻밤과 하루 낮을 노인의 배는 고기한테 끌려 다녔다. 죽을힘을 다해 싸워 두 번째 밤이 밝을 무렵 겨우 그 고기를 끌어 올려 배 옆에 붙들어 맬 수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귀로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어 때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노인은 노 끝에 칼을 잡아매어 상어와 싸웠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구에 돌아와 보니 그 거대한 고기는 뼈만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노인은 자기의 패배에 대하여 만족하였다.
이야기는 짧고 단순하지만 어느 이야기보다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산티아고란 이름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산티아고. 산티아고.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어딘가를 향해 가고 싶다는, 어떤 충동 같은 게 생긴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은 산티아고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짧은 소설 속에서 산티아고는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큰 고기를 잡고 싶다는 것은 노인 산티아고에겐 가장 절실한 것이었으리라. 큰 고기를 낚기 위해 노인은 자신의 죽음도 개의치 않아 했다.
망망대해의 바다에 홀로 떠서 자기 자신과 싸우고 커다란 물고기들과 싸운다. 주위엔 푸른 바다 외엔 어두운 밤 공기 외엔 밤 하늘의 별들, 이따금 찾아오는 새 외엔, 아무것도 없다. 노인에게 말 걸어 줄 누군가는 없다. 노인을 도와줄 누군가는 더더욱 없다. 외롭고 힘겨운 싸움이다.
ː 바다 저편을 바라보자 그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외로운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깊고 어두운 물속의 프리즘 현상을 볼 수 있고 앞으로 뻗어 나간 낚싯줄과 잔잔한 가운데서도 이상한 파동을 또한 볼 수 있었다. 무역풍 때문에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앞을 보니 한 떼의 물오리가 바로 위의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나타났다가 흐려지고 또 뚜렷이 나타나곤 했다. 노인은 어느 누구도 바다에서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노인과 바다는 큰 위안이 되었다. 이 짧은 소설에 담긴 내용을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는 알 것 같다. 전에는 책을 읽으면 어떤 강박 같은 게 있었다. 그 책을 통해 꼭 얻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글을 쓰는 직업을 선택한 이후로,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감동 받을 수 있는, 내가 원하는 책보다는 글 쓰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만 골라 읽게 되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라 남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책들을 아무 의미도 없이 읽었다.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을까? 그것 보다는 내가 책을 읽음에 있어서 경계를 짓고 있었다는 점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내가 처음으로 감동 받은 소설이었다. 순수하게 감동 받았던.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외롭고 힘겹고 고독한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그 시간은 산티아고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와 싸웠던 시간과도 같다. 그 싸움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좀 더 앞으로 끌어다 주지 않을까. 비록 싸우고 난 뒤 허무해지더라도 말이다. 싸워 이겨냈으므로 다음엔 그 싸움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잡고 있는 중심을 흐트러뜨리진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죽이는구나 고기야, 하고 노인은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그럴 권리가 있다. 나는 일찍이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위엄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형제여, 자, 와서 날 죽여라, 누가 누구를 죽이건 상관없다.
그러나 나는 84일 이상으로 그런 물고기 하나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내 자신과 싸우는 일도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산티아고 노인처럼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갈 꿈도 꾸지 않는다. 나는 이쯤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 무엇인가 기쁘게 쓴 것 같아도, 무엇인가로 숨가쁘게 내달려 온 것 같아도 뒤 돌아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낭떠러지뿐이다. 차라리 뼈만이라도 좋으니 어떤 형체가 내 뒤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실패라도 좋으니.
그러나 사람은 지지 않아
사람은 죽을지언정 지지는 않는다.
감동이 있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지지 않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는 내게 작은 씨앗을 던져 주었다. 이제 서야 겨우 그 씨앗을 품고 작은 배를 찾아보고 있다. 저 넓은 바다로 나가 볼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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