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할 고민이 생기면 일기를 썼다. 오래 전부터 했던 나만의 고민 해결 방법이었다. 사실 일기로 고민이 해결됐다면 나는 오랫동안 고민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사실이다. 일기를 쓰면서 내 마음을 정리하고 나를 다시 되돌아 볼 수 있었다고. 그것만으로도 내 고민은 큰 힘을 얻었을 것이라고.
나에게도 비밀스러운 상담사 나미야 잡화점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일기를 쓰듯 <나미야 잡화점님께>라는 편지를 쓰지 않았을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란 책을 사놓은 지는 오래 되었다. 재미있다고 소문이 난 책이었는데 웬일인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두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책꽂이에만 단정하게 꽂혀 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을 이유가 생겨서 좋았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도무지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마음 깊이 감동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도둑질을 하고 도망치다가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숨어 들어가게 된 쇼타, 고헤이, 아쓰야. 셋은 잡화점 안에 숨어 있다가 기묘한 편지를 받게 된다. 기묘한 편지는 고민 상담이었는데, 셋은 얼떨결에 상담사가 되어 고민에 대한 답장을 쓰게 된다.
처음엔 몇 번으로 끝날 것 같았던 상담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미야 잡화점 안에서의 시간은 밖의 시간과 달랐기 때문이다. 새벽이 오지 않는 이상 상담은 계속 할 수 있었다. 쇼타, 고헤이, 아쓰야가 숨어 있는 나미야 잡화점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셋은 과거에서 오는 상담 편지를 받고 있는 것이었다. 좀도둑이지만 자신감을 갖고 상담을 해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시간 때문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고민은 선택과 관련이 있다. 나미야 잡화점에 배달된 상담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뮤지션의 꿈과 부모님의 생선 가게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 아빠 없는 아이를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여인, 부모를 따라 야반도주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학생 아이, 암에 걸린 남자 친구를 간호해야 할지 아니면 올림픽에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운동선수.
선택이란 참 어렵다. 나도 그렇다. 그 선택이 앞으로 내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럴 때 나미야 잡화점처럼 내 선택을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에 위안이라도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나미야 유지가 했던 말처럼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 뿐.
나미야 유지는 자신이 죽고 난 후 33번째 기일이 되는 날 하루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 창구를 부활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자신이 써준 답장이 상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서 였다. 인터넷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상담을 받고 어떠한 선택을 한 사람들의 편지가 온다. 나미야 유지는 죽기 전 나미야 잡화점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나미야 잡화점은 미래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나미야 유지는 자신의 유언대로 상담창구가 부활한 날, 미래에서 온 편지를 읽고 흐뭇해한다. 편지는 대부분 나미야 유지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고민편지들과 부활 창구로 보내 온 편지들을 읽다보면 환광원이란 곳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곳은 나미야 유지가 사랑했던 여인이 설립한 곳이기도 하다.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 얼떨결에 상담사가 된 좀도둑 셋도 환광원과 연결되어 있다. 어째서 환광원일까. 생각했다. 모든 고민 상담자들은 어떻게든 환광원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또 환광원은 나미야 유지와도 연관이 있다. 나는 환광원이 나미야 유지의 ‘나미야 잡화점’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환광원은 나미야 유지의 고민과 선택이 있는 그런 곳이니까.
어쩌면 선택이란 나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내 선택에 고리가 생기고 그 고리에 또 다른 고리가 생기면서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선 가게 대신 뮤지션이 되기로 했던 청년은 자신의 선택으로 죽게 됐지만, 그 죽음으로 자신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게 되었다. 나미야 유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로 했지만, 그 결과는 환광원이 설립되어 많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나미야 잡화점에 ‘기적’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결국 선택으로 ‘나’만의 기적만 바랐다면 ‘나미야 잡화점’에는 ‘기적’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의 이야기가 고리에 고리가 생겨서 먼 훗날 언젠가 기적을 만났다면 그건 누군가의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가 맺은 결실일 것이다.
지금 내 이야기에도 고민이 있다. 언젠가 내 이야기도 기적을 만나게 될까. 그때가 나를 위한 기적이 아니라도 좋겠다. 내 이야기가 만나게 될 기적을 위해 ‘착실하게 살자,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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