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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TORY/읽어보다

여름의 책 - 토베 얀손

by cookies- 2020. 9. 3.

할머니.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 모두에 대한 추억이 없는 난 이 책을 읽으며 소피아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벌써 40이 넘은 나이지만 그런 부러움은 나이에 상관이 없나보다. 아니면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기에 더 부러운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여름이면 섬에서 지내게 되는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가족은 할머니, 소피아, 아빠인데 할머니와 손녀인 소피아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아빠는 주변인물처럼 등장한다. 읽다보면 손녀가 할머니에게 너무 버릇없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그건 할머니 또한, 말하자면 근엄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들을 하는 그런 어른이 아니라는 점에서 납득이 될 수 있겠다. 할머니는 자유롭고 자연을 사랑하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내용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잘 그려지지 않으니 책 읽기가 힘들기도 했다. 번역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섬이라는 공간이 잘 떠오르지 않았던 건 내 경험 부족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도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나 어떤 맞닥뜨리는 상황들이 재미있어서 계속 읽어나갔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이 책의 내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공간이 머릿속에 펼쳐지니 읽기가 한결 수월해지는 한편 재미도 배가 되었다. 너무 사랑스럽고 쓸쓸하고 고독하면서 정답기도 한 이 책을 오래 두고 기억하면서 꺼내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이 있다. 고양이, 가운, 지렁이와 다른 벌레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고양이는 사랑과 관심에 대해 가운은 그리움에 대해, 지렁이와 다른 벌레들은 상상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지렁이와 다른 벌레들을 읽을 땐 어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또 텐트라는 이야기를 읽을 때 내 경험이 떠오르기도 했다.

『새들이 다시 울었다. 한 무리가 날아가면서 내내 울었다. 창에는 불을 켜 놓았기 때문에, 바깥에 덮인 밤이 실제보다 훨씬 어두워 보였다.

“그럼 어떤지 내가 이야기할게.” 소피아가 말했다. “모든 소리가 더 잘 들려. 그리고 텐트는 아주 작지.” 소피아는 잘 생각해 보고 말을 이어 갔다. “아주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모든 소리가 다 들리니까 참 좋아.”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다 들리지.” p91』

나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말을 정말 그렇다. 나도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작은 텐트을 가지고 캠핑을 간 적이 있는데 밤이 되어 자려고 텐트 안에 누워 있다가 깜짝 놀랐다. 텐트 안에서는 밖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나는 것처럼 잘 들렸다. 멀리 있는데도 아주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아주 선명하게.

 

책의 마지막 부분이 자꾸 떠오른다. 깊은 밤 할머니는 집 밖으로 나와 곧 떠날 집과 그를 둘러싼 공기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다. 바닷가로 배가 한 대 지나가고 곧이어 또 다른 배가 지나간다. 첫 번째 배는 사라졌고 두 번째 배도 사라졌지만 바다를 가르던 배의 울림, 혹은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것이 뛰는 심장소리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여름을 보낸 이 섬에서 곧 떠나게 되지만 이곳은 할머니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소피아를 찾았을 때는 이미 거의 다 올라간 다음이었다.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느꼈다.

아이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어린아이들에겐 아직 원숭이 기질이 많이 남아 있어서 위험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꽉 붙잡을 줄 알고, 누가 놀라게 하지만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소피아는 단과 단 사이에서 쉬어 가며 아주 천천히 기어올라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겁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잘 한다!” 할머니가 외쳤다. “조금만 더 가면 되겠네!”<p.57>

 

“사랑은 참 이상해.” 소피아가 말했다. “사랑은 줄수록 돌려받지 못해.”

“정말 그래.” 할머니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계속 사랑해아지.” 소피아가 위협하듯이 말했다. “더욱더 많이 사랑해야지.”

할머니는 한숨을 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 소피아가 말했다. “가끔은 내가 마페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마페를 사랑할 힘이 없는데, 그래도 계속 마페 생각만 나.”

소피아는 몇 주일 동안 고양이를 따라다녔다. 부드럽게 말을 걸고 위로와 이해를 선사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고, 그러면 잠깐 화를 내며 고양이의 꼬리를 잡아당겼다. <p.60>

 

섬을 방문한 일로 할머니는 어딘가 슬퍼졌다. 말란데르한테는 뭔가 생각이 있었지만, 스스로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리라. 너무 늦은 뒤에야 이해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힘이 없다. 아니면 중간에 다 잊어버리고는 잊어버린 줄도 모른다.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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