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 시처럼,
이 시집을 분석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말하자면 나와 같은, 어쩌면 평범하고 일반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이. 오트 퀴튀르에 실린 시들을 분석하고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건 어쩌면 아무 소용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다 쓰고 난 후 이 글을 쓴 ‘나’ 조차도 무엇을 얘기하려고 했는지 도무지 알지 못 할 수도 있다.
무슨 의미인지도 파악이 안되면서도(읽으면서 앞의 내용을 잊어버리기도 했다.) 읽는 순간이나 다 읽고 난 후에는 뭔가 서늘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니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픔’이나 ‘슬픔’, ‘외로움’ 같은 것이 불쑥 느껴지기도 하는 시들이 있었다.
알지?
앞 동네 2층에 독서실이 생겼대
거기선 말 안 해두 되구, 혼자 있어도 되구
그전엔 뭐였더라
식당이었나 옷 가게였나 그니까 이제 떨지 마
전화가 울릴 거야. 받으면 또 끊기겠지만
<정면의 오후, 부분>
피로하다는 말은 한국어로 무엇이지.
그녀는 천장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흔들리는 스프링
이를테면 녹슨 도시가 튕겨져 나가고
날이 풀리면
눈이 녹고, 창문에 두드러기가 붙으면, 액체가 꿈틀대고, 도시의 암벽에는 실외기가 매달려 있다.
<도시는 나에게 필연적 사고 과정을 부여 했다. 부분>
굵은소금을 뿌려도 순해지질 않아. 정맥 속엔 긴 실이 기어 다니고
이렇게 살다가 죽을 것을 안다. 나는 여섯 살 망원동 뒷방에 버려져 있었다. 어미는 나를 구했다. 어미는 함정이었지
<초록방, 부분>
모직 코트 : 사실 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아무 설렘도 아무 긴장도 없는 여기서는.
클립 : 아무것도 없이 한번 살아보는 건 어떤가? 아무 몸도 없이. 종이처럼. 아무 희망도 없이.
홍학 : 사람들은 희망이 없으면 죽고 싶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모직 코트 : 상처만 받습니다.
클립 : 이제 이 눈과 바람과 햇살을 쉽게 받아 보게. 그러다 낡고 낡으면 사라지면 되는 거야. 우리들이 자네를 기억하겠어. 인간을 생각하고 인간을 염려했던 멋진 모직 코트 의 느낌을.
<반인류를 향한 태양과 파동과 극시, 부분>
어느 시점에서는 시 속의 세계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한 국가의 왕이 껍질을 빚어 코트로 만들”던 그런 세계. “왜 하필 그것이 내 몸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힘이 센 어떤 공기였는지, 용기였는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이상한 세상에 내려놓았다. 나는 갈색 머리에 네 살짜리 마른 여자아이로 태어났다.”에서처럼 내가 새로 태어난 어느 세계의 이야기. “새로운 도시가 발견되”어 그 안에서 쓰인 이야기일까. “전기 끊긴 지하 구석에서” “발전기를 돌리는” “난쟁이 왕”이 사는 세계일까.
이국적이거나 아주 멀리 떨어진(“어딘가에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을 거라는”) 세계처럼 보이다가도 낯익은 이름이 보이면 “김현정”이나 “숙희”같은, 그러면 내가 속한 세계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이 세계와 연관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애는 쓰지만 모르겠다.
생각이 뒤죽박죽 뭉그러지는 순간,
“나는 우주의 엔돌핀 같은 증가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했고, 긴 목엔 주름이 늘었어. 나는 가냘프고 긴 이론도 세우지 못했으며, 어느 날 농촌 헛간에서 갈고리나 곡괭이를 봤을 때. 왜 그런지 나는 펑펑 눈물이 쏟아졌어”<반인류를 향한 태양과 파동과 극시, 부분>
시집을 읽으면서 그 깊이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갈고리나 곡괭이를 보고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감정이 튀어나오는 것만은 확실했다.
오트 쿠튀르를 읽으려면 시를 깊이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는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발전된 시 읽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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