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오랜 습작 끝에 소설가가 된 친구가 있다. 나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다른 친구를 통해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신문사에 중편으로 등단을 하게 되었는데, 등단 후 통장에 들어온 상금을 보고는 정말로 이게 '내' 돈인지 알아보기 위해 은행에 전화를 해보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조금 놀라면서도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기도 했다. 문학을 하겠다고 함께 공부하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그 긴 시간을 견디고 결국엔 결실을 맺은 그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지만, 가장 최근 들려오는 말로는 상금을 모두 써버리고 지금은 다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 오롯이 문학만을 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순수문학이라면 궁핍한 생활은 어느 정도 각오 해야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이 무겁고, 삶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고... 느껴진다.
다시 쿠누트 함순의 굶주림을 읽으면서 나는 그 친구를 떠올렸다.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굶주림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허기 진 배를 움켜잡고 하루종일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그러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머릿속에서는 돈 얘기를 해보자. 해보자. 하고 수도 없이 말하고 있지만 결국엔 그냥 지나치고 만다. 어쩌다가 어렵게 말을 꺼내도 단 몇 푼의 돈을 쉽게 빌려주는 이는 없다.
주인공은 극단의 굶주림으로 밀려가면서 끊임없이 자기최면을 건다.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쓸 기사에 대해서, 이 도시에 대해서, 돈에 대해서... 이러한 끊임없는 중얼거림은 주인공 자신이 살기 위해 행하는 본능같은 것이었다.
나는 웃었다. 엉덩이를 두드리며, 미친 사람처럼 웃고 또 웃었다. 목구멍에서는 한마디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웃음은 소리도 없고 열에 들뜬 것이었다. 흐느낌처럼 깊은 것이었다. ... 내 영혼에는 구름 한 점도 없었고 불편한 기분도 전혀 없었다. <p. 92, 93>
그러다가 주인공에게 돈이 들어오는 일이 생길 때도 있다. 주인공이 쓴 기사가 신문에 실리게 되어 돈을 받게 된다든지, 주인공의 처지를 알고 그가 말하기도 전에 돈을 몇 푼 쥐어 준다든지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단 며칠의 임시 방편일 뿐 주인공 전체의 생활에 도움을 주진 못한다. 때문에 일주일쯤이 지나고 나면 주인공은 다시 궁핍한 생활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러면 다시 주인공은 굶주림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돈'에 대해 생각한다.
'굶주림'은 작가의 경험이 담겨 있는 책인다. 쿠누트 함순은 어린시절부터 소설가로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매우 힘든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 책속에 담겨 있는 그 굶주림의 강도는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다. 굶주림을 해결할 음식이 자기 앞에 있어도 그것을 쉽게 소화시킬 수 없을 정도이니까 말이다.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페이지까지는 오로지 잔인하리만치, 눈물이 날만큼 굶주리고 있는 한 인간에 대해 쓰여져 있다. 한 번쯤 배고픔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알것이다. 허기진다는 것이 배가 고프다는 것이 그 굶주림을 떠나서 얼마나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처럼 광기에 사로잡히면서까지도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면서, 가끔은 숨이 차도록 뛰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충고나 도움보다 자신을 지키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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