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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TORY/읽어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언제였나요?

by cookies- 2013. 5. 1.

나는 어린시절을 산골에서 보냈다. 또래라고 하면 2 아래인 동생과 3 위인 오빠, 그리고 옆집에 살고 있는 언니 한명과 동생 한명이 전부였다. 작은 마을이고 또래도 안되었지만, 모두가 한데 모여 놀이를 하는 것은 굉장히 드물었다. 말하자면 서로 관심사도 달랐을뿐더러 셋은 남자였으므로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혼자 산에 올라, 풀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기 일쑤였는데, 그런 곳은 대개 산소 자리라는 것을 뒤로는 곧장 산소를 찾아 헤매다니기도 했다. 산은 나에게 좋은 놀이상대였다. 하루하루 발견하는 나무가 달랐고, 풀이 달랐고, 꽃이 달랐다. 처음 보는 나무나 들풀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도 하면서, 나는 그렇게 산골소녀다운 모습을 간직하며 시절을 보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산에 올라 하는 생각이라곤 언제쯤 이곳을 떠나 넓은 세상으로 나갈 있을까란 생각을 종종했었으니까 말이다.

 

 

 

 

내가 살쯤 되었을 무렵, 나는 이런 마음을 아빠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별것 아닌, 그저 평범한 대화 같아도 나에게 그날은 어떤 날들보다도 따뜻했던 날로 기억되어 있다. 아빠와 둘이 나눈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까도 말했듯, 내가 살았던 곳은 작은 산골마을이라서 논이나 밭이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려면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다. 개울 옆으로 좁은 오솔길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고 다시 높지 않은 산의 고개 길을 지나 산속에 옴폭 숨겨져 있는 들판을 걸어가면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아빠는 봄이 되면 그곳에 일을 하러 자주 가셨는데, 산짐승 때문에 혼자서만 다녀오시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나를 데려가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떼를 쓰긴 했지만, 다른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냥 으레 하는, 아빠가 그곳으로 떠날 어김없이 치러지는 떼쓰기 행사와도 같은 것이었다.

 

아빠는 조금 엄한 분이셨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것도 잊은 , 나는 아빠와 발을 맞추면서, 숨을 할딱거리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냈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즐거웠기 때문이아니었을까. 가는 길은 그렇게 질문들로 채워졌다.

 

아빠가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실 나는 개울가에 앉아서 예쁜 돌을 주워 모으기도 했고, 오솔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달래를 캐서 모아 놓기도 했다. 어째서 물컹해졌는진 모르겠지만, 물컹해진 땅을 밟으며 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아빠의 일이 모두 끝났고, 집으로 가기 위해 채비를 , 개울 건너 편에서 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있는 같았는데, 조금 뒤에 알게 된 그 무엇은, 다름아닌 멧돼지였다. 가끔 멧돼지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나는 아빠 옆에 붙어 있었다. 아빠는 우리가 먼저 위협하지 않으면 괜찮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멧돼지들은 우리쪽이 아니라 개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날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빠와 내려가는 길은 나보다 아빠가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를 안심시켜 주려는 같았지만, 머릿속에는 오로지 멧돼지뿐이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고개 길에 들어서려고 다시 멧돼지들이 나타났다. 멧돼지들이 강을 건너 고개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조금 빨리 걸었더라면 멧돼지들과 고개 길에서 마주칠뻔했다. 생각을 하니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참 후에 아빠와 고개의 윗부분을 지날 멧돼지들의 발자국을 발견할 있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내려와 개울을 건넜다. 개울을 건너고 보니 개울 건너편 속에 멧돼지들이 줄지어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이렇게 무서운 곳에서 빨리 이사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아빠는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빤 이곳이 너무 좋다고. 산과 나무들, 동물들과 이렇게 모여 사는 정말 좋다. 그러면서 멧돼지가 많이 무서웠었냐고 손을 잡아 주셨다. 나는 아빠가 이런 말을 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는 쉽게 마음을 보여주는 분이 아니셨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고작 이었던 내가 아빠를 알면 얼마나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아빠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연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내가 절대 그럴리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낭만이 아빠에게 누구보다 넘쳐났던 아니었을까.

 

 

  영혼은 이제 이상 아프지 않았다. 바람과 나무와 시냇물과 새들이 불러준 부드러운

노랫소리로 마음이 깨끗이 씻겼기 때문이다.

몸의 마음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을 이해하거나 신경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역시

몸의 마음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고 이해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은 나에게 지옥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출생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으며, 악의 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자연은 그런 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노라면

나도 그런 말들을 잊을 있었다. p.312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저자
포리스트 카터 지음
출판사
아름드리미디어 | 2009-03-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인디언의 세계를 어린 소년의 순수한 감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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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을 읽으며 나는 아빠와 함께 했던 그날을 기억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이 눈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그날이 떠오른다. 어쩌면 아빠의 마음을 알게된 소중한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나는 제일 보이는 곳에 책을 꽂아 놓았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지금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언제였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빠와 함께 했던 그날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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